지역행복생활권
조선왕릉

소개

강릉

제13대 명종 · 인순왕후 강릉(康陵)

  • 능의 구성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전체적인 능침은 문정왕후의 태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여,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향·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을 말한다. 광릉, 숭릉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 능의 역사

    명종은 모후 문정왕후의 3년 상을 마친 후 며칠이 지난 1567년(명종 22)에 세상을 떠나, 태릉 동쪽 언덕에 먼저 능을 조성하였다. 그 후 1575년(선조 8)에 인순왕후 심씨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강릉 좌측에 쌍릉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 명종(明宗) 이야기

    명종(재세 : 1534년 음력 5월 22일 ~ 1567년 음력 6월 28일, 재위 : 1545년 음력 7월 6일 ~ 1567년 음력 6월 28일)은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로 1534년(중종 29)에 태어났다. 1539년(중종 34)에 경원대군에 책봉되었고, 1545년(인종 9개월)에 이복형 인종의 유명(遺命)으로 왕위에 올랐다.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탓에 모후인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수렴청정 기간 중에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사건 등을 계기로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과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왕권은 실추되고 외척 일족의 수탈로 민생이 피폐하여 사회가 불안하였으며, 거듭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런 상황에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553년(명종 8)에 친정 선포 후, 외척을 견제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보려 하였으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였다. 1563년(명종 18)에 외아들 순회세자의 급서와 1565년(명종 22)에 문정왕후의 장례를 치른 후 1567년(명종 22)에 경복궁 양심당에서 34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3대 도둑을 홍길동, 장길산 그리고 임꺽정으로 꼽았다. 이 중 임꺽정은 16세기 중반 명종 재위 시에 함경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도둑으로 양주의 백정 출신이다. 자신의 천한 신분에 대한 불만을 품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도둑질을 일삼다가 훔친 곡식 등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줘 의적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명종 대에 정치적인 혼란과 흉년이 이어지는데다, 관리들의 타락과 부패가 심해져 민심이 흉흉하자, 세력을 모아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털어 곡식들을 빈민에게 나눠주며 의적 행각을 벌였다. 1559년(명종 14)에는 개성까지 쳐들어가 도둑질을 하는 등 과감하게 행동반경을 넓혔다가 참모와 가족들이 체포되면서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임꺽정 일당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신의 평이 『명종실록』에 실려 있다.
    【 국가에 선정(善政)이 없고 교화가 밝혀지지 않아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포학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기름과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으며 기한(飢寒)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연명(延命)하려고 도적이 되었다면,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요 그들의 죄가 아니다. 어찌 불쌍하지 않은가. 】